제안서 작성법, 한국 공공·대학 제안서에서 지키는 다섯 가지 원칙
제안서를 잘 쓴다는 말은 글을 잘 쓴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국 공공기관과 대학의 제안서를 읽는 사람은 평가위원이거나 결재 라인이고, 짧은 시간에 여러 부를 읽습니다. 그 조건에서 읽히도록 만드는 일이 제안서 작성입니다. 저희가 실제 작업에서 지키는 규칙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원칙 1. 목차를 평가표에서 역산합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목차를 짜는 것이 아니라 평가 기준을 찾는 것입니다. 제안요청서나 공고에 평가 기준이 있으면 목차를 평가 항목 순서대로 짭니다. 평가위원이 채점표를 들고 순서대로 넘길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배점이 높은 항목에 분량과 근거를 몰아줍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점수가 걸린 이야기에 지면을 쓰는 것입니다.
발주처가 양식이나 필수 목차를 지정했다면 한 항목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누락은 감점이거나 재작성 사유가 됩니다.
원칙 2. 결론을 맨 앞에 둡니다
각 섹션의 첫 문단, 되도록 첫 줄에 핵심 메시지를 놓습니다. 뒤에서 밝히는 구조는 읽히지 않습니다. 슬라이드 형태라면 페이지 상단 한 줄만 읽어도 그 페이지의 결론을 알 수 있게 만듭니다. 이 한 줄을 거버닝 메시지라고 부릅니다.
강조는 아껴서 씁니다. 핵심은 진하게 처리하되, 전부 강조하면 아무것도 강조되지 않습니다.
원칙 3. 한 페이지에 메시지 하나
| 원칙 | 내용 |
|---|---|
| 한 페이지 한 메시지 | 한 페이지에는 메시지 하나만 담습니다. 여러 개를 섞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
| 거버닝 메시지 | 상단 한 줄이 그 페이지의 결론입니다. 결론을 먼저 놓고 근거를 뒤에 답니다 |
| 도표 하나에 개념 하나 | 도표 한 장에는 개념 하나만 그립니다. 바로 읽히는 것이 우선입니다 |
세 가지 모두 같은 이야기입니다. 읽는 사람의 한 번 읽기에 하나만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원칙 4. 문체는 제안서의 문체를 씁니다
제안서는 편지가 아닙니다. 저희가 지키는 문체 규칙은 다섯 가지입니다.
- 한다체 문어체를 씁니다. 다만 어미만 뒤집으면 반말이 되므로, 문장을 개조식과 라벨형으로 재구성합니다.
- 소제목은 명사형으로 씁니다. 질문형 제목은 칼럼의 문법이지 제안서의 문법이 아닙니다.
- 서술 문단보다 표 개조식을 씁니다. 라벨 열과 내용 열로 나누고, 보조 설명은 볼드 라벨 뒤에 붙입니다.
- 하는 것만 긍정형으로 적습니다. 무엇을 안 한다는 선언은 우리 결핍을 스스로 알리는 문장이 됩니다.
- 협의 경위와 판본 비교를 쓰지 않습니다. 어떤 논의를 거쳐 이렇게 됐는지는 설계에만 반영하고, 문서에는 결과만 적습니다.
문장 중간 대시도 쓰지 않습니다. 구분이 필요하면 콜론이나 가운뎃점을 씁니다.
원칙 5. 숫자가 신뢰를 만듭니다
목표와 성과는 숫자로 씁니다. 막연한 "역량 강화"가 아니라 시간과 팀 수와 산출물 종수로 씁니다. 그리고 숫자를 적었으면 검산합니다. 저희가 반드시 계산해 보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 범위끼리 곱한 값은 양 끝을 직접 계산합니다. 읽어서는 잡히지 않고 계산해야 잡힙니다
- 배점의 합이 만점과 맞는지 확인합니다
- 블록 시간의 합이 표기한 총 시간과 맞는지 확인합니다
단가는 끝수를 깔끔하게 씁니다. 역산 흔적이 보이는 숫자는 끼워 맞춘 숫자로 읽힙니다. 근거 없는 실적 수치는 아예 쓰지 않습니다. 저희는 검증된 수치 목록을 따로 두고 그 안에서만 인용합니다.
기획서의 뼈대와 마지막 한 칸
한 장짜리 기획서 계보에서 온 뼈대는 이 순서입니다.
제목, 부제, 목표, 세부 목표, 논리적 근거, 재정, 현재 상태, 그리고 마지막에 실행 요청입니다.
마지막 칸이 자주 빠집니다. 아무것도 부탁하지 않으면 그것은 기획서가 아니라 설명서입니다. 확인이든 승인이든 회신이든, 상대가 다음에 할 행동을 문서 끝에 적어야 합니다.
검증은 두 겹으로 합니다
문자열로 잡을 수 있는 것과 계산해야 잡히는 것이 다릅니다. 그래서 저희는 검증을 두 겹으로 나눕니다.
첫 겹은 자동 검사입니다. 금지 표기, 문장 중간 대시, 노출되면 안 되는 금액 같은 문자열은 스크립트가 훑습니다. 둘째 겹은 사람의 검수입니다. 항목 사이의 정합성, 산식, 참조 번호처럼 계산과 대조가 필요한 것은 검수자에게 계산 지시와 함께 넘깁니다.
그리고 발송 기록을 남깁니다. 무엇을 언제 어떤 파일로 보냈는지 남겨 두어야, 나중에 수정할 일이 생겼을 때 변경 고지를 먼저 할 수 있습니다.
정리
제안서 작성의 대부분은 문장력이 아니라 순서와 검산입니다. 평가표에서 목차를 역산하고, 결론을 앞에 놓고, 한 페이지에 하나만 담고, 제안서의 문체를 지키고, 숫자를 두 번 계산하는 것. 다음 제안서를 여실 때 이 다섯 가지를 문서 맨 위에 적어 두고 시작해 보시면, 고쳐 쓰는 횟수가 줄어드는 것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